중독자 가족들의 대처법
가족들의 대처법
중독성은 그냥 우연히 그리고 가만히 있다고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과 함께 배우자 및 부모(가족)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배우자(부모)의 도움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한다면 남편(자녀)으로서 자존감을 세워주고 인정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뭘 잘했다고 인정해주고 자존감을 세워주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온전한 회복을 위해 중요한 요소입니다.
중독된 대상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고 싶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중독자가 계속해서 신뢰를 깨뜨렸기에 신뢰할 수 없습니다.
중독자의 특성이 바로 신뢰와 믿음을 깨뜨리는 데 무의식적 목적이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행위는 생각하지 못하고 결과론적으로 가족들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마음속으로 중독자는 생각합니다. “거봐, 내가 생각한 대로야. 가족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를 거부해!” 만약 가족들이 신뢰와 믿음을 주지 않는다면 중독자의 생각을 증명하는 것이 되므로 중독의 늪에 더 깊이 빠지게 됩니다.
중독에 빠진 분들의 인간관계는 매우 취약하며 가족 및 다른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밀한 관계 맺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관계 맺을 때는 자신의 필요 때문에 사용되는 대상으로 피상적인 만남을 갖습니다. 이 피상적인 만남은 자신을 외롭게 만들면서 중독의 악순환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독자의 무의식적 생각에 자극받아 그것에 가족들이 조종당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신뢰를 주지 않는다면 중독자의 병리적인 무의식적인 자극에 말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신뢰해주고 믿어주는 것이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중독적인 행동을 계속한다고 업신여기고 쓰레기처럼 보게 되면 중독성은 점점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입니다.
사랑과 관심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중독자의 공격성에서 견디고 살아남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중독치료에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가족뿐만 아니라 치료자에게도 해당합니다. 공격성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중독자 행위의 결과에 보복하지 않고 그 대상을 버리지 않으며 함께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눅 6:32] 사랑의 체험 그리고 좋은 대상의 경험은 공격성이란 산을 넘어야 중독자에게 그 사랑의 경험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족들이 신뢰와 믿음을 지속해서 유지한다면 중독에서 회복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중독자의 특성상 이런 가족들의 신뢰와 믿음이 튼튼하고 진짜인지 무의식적인 확인 작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 모습이 가족의 기대를 계속해서 저버리는 행위를 하게 하며, 몇 번이고 실망을 안겨주는 공격성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가족들이 행위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존재의 존귀함으로 중독된 대상 그 존재 자체의 존귀성을 지속해서 인정해준다면, 그 후에 회복의 징검다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요!
먼저 자신의 마음 상태를 살피고 중독된 대상에게 어떠한 행동과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준비하고 다짐할 때, 자신도 상처받지 않으면서 중독 대상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종종 가족 모두 뛰어나고 세상에서도 출세했는데, 유독 한 사람만 중독자가 되어 가정에 손해를 끼치는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가족 일원들은 “나는 잘나고 똑똑한데, 넌 왜 이렇게 못나냐!”라는 마음의 상태를 보이게 됩니다. 이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 역동은 가족 구성원들의 결점이나 허물, 못난 부분들을 한 사람에게 모두 투사하고, 그 투사한 열등한 부분을 중독자는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게 되며, 가족 구성원들은 모든 허물과 결점은 오직 저 중독된 사람에게만 있다는 무언의 표현과 마음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왜곡된 무의식적인 관계를 맺는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성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순기능으로 바로 잡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들 스스로 자신의 허물과 결점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가정환경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나 자신이 가족인 한 사람을 중독자로 만드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 등 스스로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가 의지가 있으면 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보통 가족들은 중독된 사람에게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가 의지가 있으면 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등 개인의 인격에 호소합니다. 이것은 마치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아이에게 네가 의지가 있으면 걸을 수 있는 것 아니냐, 네가 걸으려고 해봐라. 걸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지가 약한 사람에게 의지를 다져봐라. 말을 한다고 그 의지가 강해지지는 않습니다. 걸음만 아이에게 잘 걸어라. 말한다고 잘 걷게 되는 게 아닌 것처럼요..
걸음만 가리키는 엄마의 모습을 볼까요….
아이가 처음에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잡아 주거나 천천히 자신이 일어날 때까지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면서 일어나게 되면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지요…. 그러다 걷다가 넘어지면 안쓰러워하지만 이내 잘할 수 있다고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아이는 다시 제자리서 서서히 일어나며, 엄마는 반영과 찬사를 보내고 그 후 아이가 어렵게 첫발을 다시 디디면 다시 기뻐합니다. 엄마와 아이는 이런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면서 아이는 잘 걷게 되고 나중에 뛸 수 있게 되지요…. 회복도 이러한 인내가 필요하고 위로와 지지가 필요하면 회복하는 과정에 넘어져도 다시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그 과정을 감동적으로 바라봐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가족의 환경에 따라 대처해야 할 부분들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족이 준비해야 할 마음입니다.
중독자 가정의 현명한 대처법은 서로가 동일시되지 않고 서로 독립체로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돈을 잃으면 갚아주고, 폭력과 폭행을 가족이라 묵인해주고, 새로운 일을 한다면 지원해 주는 모습은 일견 중독된 대상을 위해 가족들이 힘써 도와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중독된 대상이 한 개인으로 독립되는 길을 막는 것입니다.
성인이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물론 가족이 그 책임을 일부 떠맡을 수는 있지만 모두 그리고 반복적으로 떠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소 매몰찬 측면도 있겠으나 이러한 단호함을 가족들이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단절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지속해서 정서적인 접촉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구들이 믿음과 신뢰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한 도박중독자 가족은 중독자가 돈을 잃고 들어오면 또 해냐! 이 인간아! 하면서 난리 치게 되며 너 죽고 나 죽자는 마음으로 호되게 비난하고 나무란다. 그런 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갚아주는 (중독자의 책임을 대신 지는 동반 의존성의 형태) 결과로 끝납니다. 그 후 며칠, 아니 몇 달 뒤에 더 많은 빚과 더 위험한 위기 상황을 가지고 부모나 배우자에게 또 어떻게 도와 달라고 합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절대로 이런 일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재발하면서 파괴적인 패턴을 반복하면서 점점 갈 수로 주변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까지 물귀신처럼 패자의 삶으로 끌어 내립니다. 오히려 중독자가 재발할 때는 중독자 자신도 무척 괴롭게 자괴감에 빠져 있기에 가족들은 중독자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행위에 따른 책임은 철저히 본인이 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도와주게 되는 이유를 들어 보면, 저렇게 고통스러워하고 힘든데 그것을 보고 있기 힘들고 혹시 자살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도와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도와주는 행위의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 본다면 중독자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자신의 힘든 상황이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도와주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정말로 중독자를 돕고 싶다면 중독자를 도와주는 자신들이 각자 느끼는 힘든 마음을 인내로써 견디어 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중독의 회복은 중독자든 가족이든 각자가 고통을 느끼고 견디고 가야 야할 고유한 삶이 짐이 있는 것이지요.
타인의 삶을 대신지는 행위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도 타인의 삶의 몫을 대신 질 수 없으며 오로지 자신만의 삶의 짐을 지신 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고 자기 삶의 몫을 져야 하는 고유한 영역입니다. 바로 중독자를 도와주려는 행위도 그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되며 중독자를 더욱 의존적인 상태로 남게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가족 일원들이 중독자에게만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서로에게 애정을 쏟고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서로 뭉쳐서 헤쳐나가야 합니다.
대부분의 중독자 가정에서는 중독자에게만 신경 쓰는 나머지 다른 구성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건강한 가족의 대처는 가족 내에 중독자가 생기게 되면 가족들 간에 서로 대화를 많이 하여 서로의 힘듦과 애정을 확인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중독이라는 병에 대처하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가족이 한결같은 신뢰를 주기 위해 가족 스스로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있습니다.
* 가족 스스로 중독자의 모습이 안타깝고 불쌍해 보인다고 도움을 주지 말 것
* 물질을 제공하지 말 것
* 범법행위나 폭력을 행사할 때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
*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을 것
* 재정적인 독립을 할 것 (재산을 공동명의 또는 본인 명의)
* 남편에게 지나친 의존심을 가지지 말 것
* 중독되지 않은 상태에 관심을 보이고 중독된 행위나 상태에 있을 때는 관심 가지지 말 것
* 중독자만 치료 받길 권유하지 말고 가족 자신도 치료적 도움을 받을 것
- 위의 글 내용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복제할 시 반드시 출처를 표기해 주십시오) -
출처: 서울중독심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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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12.10.17
작성자: arbn | 작성일: 2025-07-04 01:08:53 | 조회수: 291 | 댓글: 0
성중독자 가족을 위한 안내
고통에서 회복으로: 자신과 관계를 치유하기 위한 여정
우리가 직면했던 고통은 종종 부정의 벽에 갇혀 있었습니다. 성중독이라는 현실 앞에서, 많은 이들이 그것을 인정하기보다 부인하거나, 사소하게 여기며 스스로를 달래려 했습니다. “이건 다들 겪는 일이야.” “별거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이런 자기 방어의 언어로 상처를 감추려 했지만, 얇았던 그 위로의 막은 금세 찢어졌고, 억눌린 분노와 절망은 우리의 내면을 점차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통제라는 이름 아래 집착적으로 성중독을 다스려 보려 했습니다. 거짓말로 감추고, 끊임없이 뒤를 캐거나 서로를 감시하며 연민과 분노의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이 모든 노력은 오히려 우리 스스로를 더 깊은 혼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때로는 통제를 쥐기 위해 성적 행동 자체를 도구로 삼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존엄성을 더욱 해치고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먹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우리는 고통의 본질을 외면하거나 압도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외부적인 것에 의존하기도 했습니다. 나를 마비시키는 약물이나 과도한 음주, 쇼핑, 끝없는 일과 같은 것으로 탈출구를 찾아보았지만, 그런 행동은 결국 순간적 위안을 넘어선 새로운 고통을 낳았습니다. 우리의 건강뿐만 아니라 직장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균열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차례 실패와 좌절 끝에 비로소 우리는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성중독이라는 현실은 억지로 부인하거나 무시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그 상황 속에서 타인을 통제하려는 힘겨운 사투가 오히려 우리의 삶을 더 큰 무질서로 몰아간다는 것을 말입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기
회복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에서 성중독과 그 영향을 이해하면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성중독을 인간적인 약점이 아니라 하나의 질병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나쁜 사람이 아닌 아픈 사람으로 그들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시선의 전환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배워야 했습니다. 첫째, 성중독자의 문제는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 둘째, 그들의 행동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슬픔은 결코 무가치하거나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중독자의 행동과 그 결과는 나의 가치나 내 삶의 모습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성중독자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우리의 관계와 정서적 건강에 더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선택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통제가 아니라 수용의 마음으로, 억압이 아니라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작성자: arbn | 작성일: 2025-07-04 13:56:03 | 조회수: 219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