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코너

종교중독 수기 | 거룩한 시간 by.십오월

페이지 정보

작성자 ARBN 댓글 0건 조회 134회 작성일 21-07-03 10:01

본문

종교중독에 관련된 좋은 수기가 있어서 공유합니다.
십오월 작가님의 수기가 종교 중독에 관련되어
많은 고통과 고민을 갖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unholy


교만한 거룩 (나의 종교중독 시간들)

 1
 사람은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좋아하고 고상하고 우아한 예술을 찬양하는 한 면과,
마치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만 같은 미신적인 종교의 모습과 과학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고방식에 그저 편한 자세로 앉아 즐길 수 있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문화를 향해 가는 다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지적이고 똑똑한 사람이어도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보면서
그날 하루 특정 숫자를 피하기도 하고 물을 조심하기도 한다.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망가져버리고, 나의 의지와 전혀 무관한 일들이 닥칠 때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기에 조금이나마 그런 것을 피해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것이 어리석어 보이든, 말도 안 되는 것 같아 보이든지 간에 사실 모든 인간은 그러하다.
내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종교에 의지를 많이 하는 분이시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다.
그런데 그게 본인 당신만 그러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자기가 좋다고 여기는 것을
자식에게 주는 것처럼, 엄마도 당사자만 의지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동생도 그렇게 종교에 맡기고자 했다. 그게 최선이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엄마는 특히 나에게 더 그랬다. 흔히 말하는 영적인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기도를 받거나
안수를 받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문제는 그 계시받은 사람들이 계속 바뀐다는 데에 있었다.
엄마에게는 아무 문제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문제였다. 물음표였다.

 "저분 말은 꼭 들어야 돼. 네가 저분 기도만 받으면 뭐든 잘하고 잘 될 수 있어."

 이렇게 말해서 엄마 말대로 하면 어느새 기도하는 사람은 또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같은 패턴이 계속되었다. 어릴 때였지만 그 뒷면에는
여러 금전적인 문제와 인간관계 안의 감정적인 부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곤 했다.
나는 점점 그런 기도에 대해 무심해져 갔다. 의심도 커져만 갔다.

 '대체 교회에서는 왜 저런 기도를 받을 수 없는 건데? 왜 목사님이 아닌 권사님이 하는 건데?'

 '은사를 받았다.'라고 하는 사람이 꼭 목사가 아닐 수도 있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의문이었다.
늘 '가장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바뀌는 것도 나를 점점 불편하게 만들었다.
저번에 그 사람도 아니면 이 사람도 아닐 수 있잖아. 그럼 또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거야?

 내 안에 싹트기 시작한 의심과 불신은 사춘기가 되면서 부모에게 내 힘을 돌려받고자 하는 반항과
맞물려 확 터져버렸다. 엄마가 기도하는 곳, 기도 받는 곳을 안 따라가겠다고 하면서 문제가 커진 것이다.
나는 엄마와 싸우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모습은 무척이나 보수적이고 '부모는 자식을 때려도 되고, 자식은 무조건 참아야 된다.'는
인식이 꽉 박힌 아빠에게 완전 눈엣가시로 찍혀버렸다.
나는 점점 부모에게 못된 자식이 되었고, 나는 못된 자식이라는 사실이 억울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슬펐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고 1의 어느 봄날, 학교에 다녀와서 혼자 방에 있을 때였다. 낮잠을 자고 있었나, 잘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그런 내게 엄마가 등 뒤에서 하던 말은 정확히 생각난다.

 "엄마가 오늘 진짜 천사 같은 분들을 만나고 왔어."

 나는 엄마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싫다고. 그만 좀 하라고. 대체 왜 자꾸 그러냐고.
내가 주일에 교회를 빼먹는 것도 아니고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는데 나한테 왜 그러냐고.
 엄마는 엄마대로 엄마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성질만 피운다고 속상해하셨다.
 그 일로 엄마한테 찍힌 나는 아빠한테 혼날 때까지 엄마 등쌀에 시달려야 했다.
엄마는 아빠가 아닌 다른 것으로도 나를 꼼짝 못 하게 했다. 용돈이었다.

 "엄마한테 성질 피우고 온갖 패악질 다 부리면서 돈은 달라고 해? 네가 무슨 낯짝으로 그러냐?
세상에 너 같은 자식이 또 어딨어? 다른 집 애들 보면 유순하고 엄마 하라는 대로 말도 잘 듣고 그러던데
나는 온갖 희생 다 해가면서도 이런 포악한 대접이나 받고..."

 엄마의 화가 섞인 푸념과 성냄은 그칠 줄 몰랐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천사인지 천사 같은 사람인지를 만나러 가겠다고 해야만 했다.

 그 사람은 대형 교회 집사였다. 귀 옆에 딱 맞춰 자른 단발머리를 파마도 하지 않고 생머리 그대로 빗어
옆가르마를 타고, 머리숱이 많은 쪽에 핀 하나를 찌르고 있었다.
화장도 하지 않았고 수수하다 못해 약간은 초라한 옷차림이었다. 방 안에는 작은 옷장 하나와 책상,
책꽂이가 있었고 한쪽 벽 옆에 베개가 놓여있었다. 그 옆에는 검고 큰 성경책과 찬송가책이 가지런히 있었다.

 집사님은 엄마가 내 얘기를 하는 내내 베개를 베고 모로 누워서 듣기만 했다.
엄마는 내가 얼마나 유약한지, 어릴 때는 얼마나 똑똑했는데
지금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어릴 때도 평범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집사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더니 나에게 말했다.

 "예배드리자."
 "어디서요?"

 내가 묻자 집사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이 성전이라며
바로 그곳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나는 성경도 없고 찬송가도 없는데요,
예배 보려고 온 거 아닌데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목사님이 아닌데도 이렇게 예배를 해요? 집사님인데 이런 거 해도 돼요? 라고 계속 물었다.
 집사님은 나에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대답해주셨다.

 “네가 나하고 예배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왔어, 모든 평신도가 예배를 이끌고 드릴 줄 알아야 돼.
목사님이 예수님 이름으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기름 부으셨으니까 우리는 할 수 있어.”

 그런 건가? 해도 되나?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억지로 예배를 따라 드렸다. 어른들이 부르는 찬송가는 고등학생인 내게 따분했다.
노래인데도 이렇게 지루할 수 있다니. 나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자 집사님은 갑자기 예배를 멈추시고 나에게 베개를 내주셨다.

 "여기 누워서 좀 자."

 싫었다. 나는 엄마 아빠랑 놀러 간 민박집이나 펜션에서도 잠을 잘 못 자는 애였는데,
하물며 처음 온 집에서, 너무 낯선 방에서 잠을 자라고?  나는 괜찮다고 안 잔다고 했다.
잠도 안 올 것 같았다. 그런데 집사님은 내가 자는 모습을 봐야 한다며 자꾸 베개에 나를 눕히셨다.
눕긴 했지만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집사님은 엄마에게 굉장히 심각하게 말했다.

 "예배드리는데 이렇게 조는 건 정상이 아니에요. 이건 정말 큰 일인데..."

 엄마는 그 말에 안색이 변했다. 이제 나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한 걱정을 하기 시작하셨다.
집사님은 아주 걱정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영이 잠들어 있는데 얘가 뭘 하겠어요..."

 내가 못 하는 게 뭐지? 내가 그렇게 심각하게 뭘 못 하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긴 제대로 하는 게 없긴 했다.
피아노 연습도 맨날 미루지, 영어 단어 외우는 건? 수학은? 제 때 공부하는 게 없었다.

 '그래, 내가 문제는 문제지...'

 나는 더는 못 누워있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집사님은 엄마에게 날 위해서 열흘 작정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자기랑 같이 예배를 드리면 된단다. 엄마는 얼른 알겠다고 하셨다.
 나는 여전히 저항감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내가 정말 잘못된 거면 어쩌지? 그래서 더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집사님은 지금 금식 중이라고 하셨다. 일 년이면 거의 반은 금식을 하고 맹물만 마시며
기도원과 교회, 집을 오가며 기도와 예배 생활에만 집중한다며 연신 물만 마셨다.

 엄마와 내가 그 집을 나갈 때 즈음 문을 열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긴 파마머리를 요란하게 하나로 묶고, 치렁치렁한 초록색 스커트에
황갈색에 금빛 반짝이가 섞인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였다. 엄마는 그 여자를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인사해. 이분도 집사님이야."

 나는 그 여자가 커다랗고 퀭한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보는 게 그다지 기분 좋지 않았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나오는데, 뒤에 온 여자가 내게 인사를 했다.

 "잘 가. 또 와."

 나는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두 집사님이 상냥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순간 마음속에 죄책감이 올라왔다. 내가 좋은 사람들을 괜히 의심하고 밀어내는 건가?
 그럼 정말 나는 문제가 심각한 건가?
 나는 집에 올 때까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집사와 우리 집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2015 © ARB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