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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풍겨 오는 유혹의 향기 - 카페인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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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RBN 댓글 0건 조회 188회 작성일 21-08-2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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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freepik

카페인 중독, 즉 카페인 관련 장애(Caffeine Related Disorder)는 커피, 콜라, 녹차, 홍차, 코코아 등
카페인이 들어있는 식품이나 물질을 장기간 섭취하거나 복용함으로써
내성과 금단현상을 보이는 약물 의존증을 가리킨다.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하고, 신경이 과민해지며, 밤에 잠을 자기 어렵고,
소화불량이 생기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면 카페인 관련 장애를 의심해 볼 수 있다.
보통 하루에 카페인 250밀리그램(커피 두 잔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양) 이상을 섭취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더해 하루 1,000밀리그램 넘게 카페인을 섭취하면 이상 증세가 눈에 띄게 드러날 수 있다.
물론 카페인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심하면 심장마비나 골다공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부정맥, 역류성 식도염, 위염, 십이지장 궤양, 방광염 악화, 뼈 건강 악화 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갑자기 카페인 섭취와 복용을 중단했을 때는
두통, 심장 떨림, 구역감, 짜증, 불안, 신경과민, 우울증 등의 증상이 올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에게 카페인 중독 증세가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커피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경기 불황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자들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즈음에도
커피 전문점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어지간한 번화가를 가보면 사거리 여기저기에 커피 전문점이 여러 곳 눈에 띈다.
매장 안에서 마실 수 없으면 들고 다니며 마시거나 포장해 안전한 실내에서 마신다.
코로나와 경기 불황도 커피 사랑을 이길 수 없다.

국제커피기구(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 ICO)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커피 소비는 연평균 2.1%씩 증가했다.
매일 전 세계에서 약 20억 잔의 커피가 소비된다고 한다.
2020년 국가별 1인당 커피 소비량을 보면 1위는 룩셈부르크로 11.1킬로그램,
2위는 네덜란드로 8.3킬로그램, 3위는 핀란드로 7.8킬로그램이었다. 한국은 1.8킬로그램으로 57위다.
수치만 보면 높지 않은 것 같지만, 식생활과 문화적 차이를 비교해보면 만만치 않은 숫자다.
2020년 한국의 커피 수입량은 18만 6,428톤으로 8억 5,061만 달러(한화 약 9,417억 원)에 달한다.
이는 세계 6위 수준이다. 국내 커피 산업 시장은 2018년 기준 6.8조 원으로 2016년 대비
18.6%, 2017년 대비 9.4%나 증가했다.
앞으로도 커피 산업 규모는 갈수록 증가해 2023년에는 국내 커피 시장 규모가
8조 6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카페인 과다 섭취는 무조건 인체에 해로운 것일까?

커피 전문점에서 일반적으로 마시는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에는 약 160~300밀리그램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에너지 드링크에는 60~200밀리그램 정도의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고,
콜라에도 약 50밀리그램의 카페인이 포함돼 있다.
 식품의약품 안전처에서 권고하는 카페인 일일 섭취량은 성인 400밀리그램, 임신부 300밀리그램,
어린이와 청소년은 몸무게 1킬로그램당 2.5밀리그램 이하다.
따라서 커피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커피 두세 잔이면 성인 하루 허용량을 훌쩍 넘는다.
개인차가 있겠으나 이 같은 허용량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게 좋다.

더 큰 문제는 성장기 청소년의 경우다.
청소년의 일일 카페인 섭취 허용량은 125밀리그램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에너지 드링크 한두 캔에 해당하는 양이다.
청소년들은 시험 기간이 되면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느라
이 허용 기준을 넘겨 에너지 드링크를 복용하는 게 현실이다.
각성 효과가 있어 잠들지 않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몸에 좋지 않은 걸 알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시험을 잘 치러야 하기에
에너지 드링크나 커피를 마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은 하루하루가 시간과의 싸움이기에 이런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그렇지만 카페인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손이 떨리고 심장이 빨리 뛰는 등의
심혈관계 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심장질환이 있는 청소년이 고카페인 음료를 과다 복용했다가 사망한 사례도 있다.
다량의 카페인은 칼슘의 흡수를 방해해 원활한 뼈 생성을 억제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성장을 저해한다.
아울러 우울증이나 불안증과 같은 다양한 정신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카페인 중독은 다른 중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카페인 중독자 가운데 니코틴 중독자가 훨씬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에너지 드링크에 중독된 대학생들이 마약 중독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학자들이 카페인의 유해성만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카페인이 몸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와 더불어 카페인이 인체에 유익하고
이로움을 주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 또한 만만치 않다.

노르웨이 공중보건연구소에 따르면 성인 50만여 명을 대상으로 커피 마시는 방법에 따른 사망률을
약 20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간 원두를 거름종이에 걸러 마신 사람들은
그냥 끓는 물에 간 원두를 넣어 마신 사람들보다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낮았다고 한다.
연구팀은 거름종이의 셀룰로스 성분이 커피 원두에 있는 기름 성분을 걸러주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를 진행한 다그 텔 교수는 “거름종이에 원두를 걸러서 마시면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줄어든다.
여과된 드립 커피를 하루 한 잔에서 넉 잔 정도 마시면 몸에 좋다.”라고 이야기했다.
잘 마시면 커피가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당뇨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커피에 많이 들어 있는 마그네슘과 클로로겐산이 체내의 포도당 축적을 막고
혈당을 조절하는 기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팀이 일반인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하루에 커피를 넉 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그보다 적게 마시거나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무려 33%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커피만 마셨을 때 이렇다는 이야기다.
커피에 설탕이나 크림을 넣으면 당도가 높아져 오히려 혈당을 더 높일 수 있다.

커피가 자살 충동을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 미첼 루카스 박사팀이 20만여 명을 대상으로
최장 20년에 걸쳐 진행된 세 건의 연구보고서를 종합 분석한 결과,
하루 커피를 두세 잔 정도 마신 사람은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50%가량 낮았다.
카페인이 중추신경계를 자극할 뿐 아니라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의 생산을 촉진해 가벼운 항우울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관과 우울감에 빠져 자살 충동이 일었다가도 커피를 한 잔 마시면
마음이 안정되면서 흥분이 가라앉음으로써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사그라드는 것이다.
연구 결과를 두루 살펴보면 좋은 분위기 속에 적당량 마셨을 때는 인체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너무 많이 마시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과하게 섭취했을 때는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후자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카페인 중독에 이를 수 있다.

커피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과학적 분석이 가능하고
앞으로도 이에 관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겠지만,
의학과 과학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커피 고유의 기능 혹은 효능 같은 게 있다.
그것은 다분히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부분에 관한 것이다.
커피 한 잔의 맛과 향, 그것이 가져다주는 정서적 위안은 수많은 예술적 성취로 드러난 바 있다.
커피 예찬론을 펴는 사람 중에는 대인관계가 빈번한 정치인,
고독과 고통을 양식 삼아 창작의 세계를 펼쳐가는 문학가,
유한한 대상 속에서 무한한 우주를 발견해내는 예술가가 많았다.

1954년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 작품뿐 아니라
『무기여 잘 있거라』, 『킬리만자로의 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소설 속에서
커피를 소재로 활용했다.
『노인과 바다』에서 마놀린은 청새치와의 싸움으로 녹초가 된 산티아고를 위해
카페로 달려가 따뜻한 커피를 깡통에 담아 온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마리아가 로버트 조던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며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가져다 드릴게요.”라고 말한다.
이 말은 커피 광고로도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음악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독일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커피 칸타타’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커피 사랑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커피를 끊으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와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호소하는 딸의 실랑이를 다루고 있다.
“천 번의 키스보다도 달콤하고 맛 좋은 와인보다도 부드러워요.
누구든지 저를 원한다면 저에게 커피를 가져다주세요.”
칸타타에 나오는 딸의 절규다. 커피를 마시게 해달라는 바흐의 호소처럼 들린다.

“내게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은 진한 커피, 아주 진한 커피다.
커피는 내게 온기를 주고, 특이한 힘과 기쁨과 쾌락이 동반된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이 남긴 말이다.
그의 말처럼 커피는 정신을 차리게도 하고 온기를 주기도 하며 특이한 힘과 기쁨과 쾌락을 주기도 하지만,
고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존재다.
생의 의지를 깨워주고, 고된 피로를 잊게 해주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고,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주는 데 커피만 한 게 어디 있겠는가?
확실히 커피는 삶을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활력소다.
하지만 그것이 도를 넘거나 지나치다면 어떨까? 고통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커피가 우리 삶에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은 생활에 맛과 향을 가미하는 촉매
또는 양념으로 활용할 때까지만이다. 그 선을 넘는 순간 커피는 맛과 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언론] 정신의학신문 [기자]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출처]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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