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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을 수가 없어요 - 육류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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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RBN 댓글 0건 조회 194회 작성일 21-06-2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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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어릴 때부터 고기를 좋아했다.
바짝 마른 그녀의 얼굴이 젓가락을 들이미는 모습은 어딘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짐승을 연상시킨다.”

김이태의 소설 『식성』은 이렇게 시작된다.
서로 너무 다른 식성을 가진 두 자매를 통해 변해가는 세상과 인생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동생의 눈으로 관찰한 베일에 싸인 듯한 언니의 유별난 식성은 특이함을 넘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밥상 위에 오른 김치찌개에서 돼지고기만을 뒤져 먹는 그녀.
떡국이 올라와도 그 위에 얹힌 양념 고기만 덜어 먹고 숟가락을 놓아버리는 그녀.”

“언니는 맛있겠다고 하고는 김치나 샐러드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기 한 덩어리를 얹어 겉이 익기가 무섭게 가위로 대강 잘라먹기 시작했다.
…… 그녀는 4인분을 거의 혼자 해치웠는데도 트림은커녕 박카스 한 병 마신 사람보다 더 가뿐해 보였다.”

주인공의 언니는 태어날 때부터 고기를 탐하는 선천적인 육식주의자였는데,
그냥 육식주의자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너무 심해서 육식증 환자라고 불러도 좋을 지경이었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 소설 속 언니 같은 사람이 종종 있다.
그저 고기를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끼니때마다 고기를 찾고,
고기가 없으면 아예 식사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다.
하다못해 멸치조림이나 새우젓 같은 비릿한 거라도 있어야 겨우 밥숟가락을 들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삼겹살을 구워 먹어요. 상추쌈 같은 걸로 싸 먹지 않죠.
그냥 고기만 익혀서 먹는 거예요. 고기로 배를 든든히 채워야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할 수 있어요.”

텔레비전에 출연한 어떤 연예인이 한 말이다.
대개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씻고 출근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해
아침밥은 그냥 거르거나 간단하게 먹기 마련이다.
아침밥을 꼭 챙겨 먹는 사람이라 해도 간편식으로 먹지 오첩반상이나 칠첩반상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한창 성장기인 아이들이나 입시를 앞둔 수험생의 경우에는 약을 먹듯 아침밥을 챙겨 먹기도 한다.

그런데 아침부터 고기를 구워 먹다니 깜짝 놀랄 일이다.
얼마나 고기를 좋아해야 일어나자마자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을까?
이렇게 고기만 먹어도 정말 건강에 지장이 없을까?

지나친 육식이 건강에 해롭다는 건 여러 연구 결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육류 섭취가 암 발병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절임 육류와 붉은색 육류를 많이 섭취한 사람은 직장암에 걸릴 위험이 20~30% 증가한다고 한다.
붉은색 육류를 하루에 약 42g 이하로 섭취하면 사망률이 남성은 9.3%,
여성은 7.6%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장암은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에서 가장 높은 발생률을 보이고 있지만,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발생률이 낮다.
환경적 요인, 즉 식습관 때문이다.
동물성 지방과 포화지방, 가공식품과 가공육의 과다 섭취가 대장암 발생률을 높인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4년 동안 5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적색육과 가공육을 매주 2회씩 섭취했을 때 대장암 발생 위험이 18%가 증가했고,
4회씩 섭취했을 때 42%가 증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장암은 우리나라에서도 급격히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다.
해마다 국내 암 발생률 순위 2∼3위에 오르곤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대장암 발병률은 10만 명당 45명으로 세계 1위에 해당한다.
직장 동료들끼리 퇴근 후 소주 한 잔 마시게 되면 자연스럽게 삼겹살이나 곱창 등을 구워 먹는 게
일상적 풍경이다. 이렇다 보니 중년 남성들의 대장암 발병률은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식생활의 서구화와 고령 인구의 증가로 대장암 발병률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간에서 콜레스테롤 및 담즙산의 생성과 분비가 올라가
대장 내 담즙산의 양이 많아지고, 대장 내 세균들이 이들을 분해하여 2차 담즙산, 콜레스테롤
대사산물과 독성 대사산물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것들이 대장 세포를 상하게 해 발암물질에 대한 감수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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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연구 결과가 속속 알려지면서 고기를 먹지 않거나 육류 소비를 줄이려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오히려 육류 섭취와 소비는 증가 추세다.
미국 농무부 통계를 보면 2011년 미국인은 1951년보다 육류를 1인당 약 28kg이나 더 섭취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채소 섭취량은
1998년 287.8g에서 2018년 248.1g으로 14% 줄었고,
과일 섭취량도 1998년 197.3g에서 2018년 129.2g으로 35% 줄었으나
육류 섭취량은 1998년 67.9g에서 2018년 129.8g으로 무려 91% 늘어났다.
의사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육류 섭취량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차 늘고 있다.
왜 이렇게 고기 섭취를 끊거나 줄이기 힘든 것일까? 고기에 어떤 중독 성분이 있는 건 아닐까?

불판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고기를 보면 배가 부른데도 젓가락을 놓지 못할 때가 많다.
여기에는 나름의 과학적 근거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약물연구소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 뇌에 있는 엔도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s)라는 화합물로부터 오는 신호가
체내의 지방 섭취를 조절한다.
이 화합물은 몸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대마초나 마리화나 등 마약을 투여할 때와 유사한 반응을 일으킨다.
즉 통증을 가라앉히고 기분을 즐겁게 하며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도록 만들어준다.
엔도카나비노이드가 증가하면 중독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쉽게 말해 한 번 지방을 섭취하면 체내에서 지방이 활발하게 분비되면서
지방을 더 먹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유전이나 환경적 요인 등으로 만들어진 복잡한 뇌의 반응일지도 모른다.
고기를 먹으면 포만감과 더불어 행복감을 느끼는 건 이런 연유에서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마르타 자라스카는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원제: Meathooked)』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고기를 끊지 못하는 원인이 중독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고기 중독의 원인을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데서 찾는다.
언제 어디서든 돈만 있으면 양질의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게 된 세상에서는
좀처럼 고기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말이다.
게다가 축산과 가공과 저장 등 각종 기술이 발전하고, 정부의 보조금으로 낮은 가격을 유지하며,
유통의 발달로 신선한 육류가 각 가정까지 빠르게 배달되는 상황에서는
부와 권력의 상징인 고기를 먹어야 건강해질 수 있고 식탁이 풍성해 보인다는 뿌리 깊은 인식을
의학계의 여러 부정적인 연구 결과들이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육식과 정신건강과의 관계는 어떨까?
채식주의자는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맑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으며,
육식주의자는 정신적으로 덜 건강하고 맑지 않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을까?

미국 서던 인디애나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는 육식주의자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상식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연구팀은 1997년부터 2019년까지 발표된 18건의 연구 사례를 비교한 결과
우울증과 불안 관련 증상을 조사한 14건의 논문 중 7건의 논문에서
“육류 소비를 피하는 사람이 우울증 및 불안 위험이 크다.”라고 보고됐으며,
2건은 반대로 “고기를 섭취하는 사람이 우울증과 불안 위험이 더 크다.”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또한 자해를 조사한 3건의 논문은 모두 “육식주의자보다 채식주의자의 자해 비율이 높다.”라는 결과가 나왔다.
호주 여성 9,11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는
채식주의자가 육식주의자보다 자해 시도 비율이 3배나 높게 나타났으며,
미국 청소년 4,746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채식주의자의 자살 시도 비율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스트레스에 주목한 4건의 연구와 삶의 질에 주목한 2건의 연구에서는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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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반대되는 의견도 많다.
『무지개 원리』의 저자로 유명한 서울대 공대 출신의 차동엽 신부는 생전에 채식만 고집했다.
그는 채식이 영성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청소년 범죄와 총기 난사 사건 같은 반인륜적인 사건의 주범이 육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70년대 미국 의회에서 청소년의 정서장애로 인한 범죄율 증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햄버거, 정제 식품, 인스턴트, 설탕, 특히 고기 등이 문제라는 것이 보고된 바 있다.
이런 사실들을 공부하면서 채식과 거친 통곡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이를 실천하고 있다. 지금 내 머리는 새벽의 이슬과 같다.
내가 조금 탁하게 먹으면 머리에 안개가 낀다. 성품이 곧 음식이다.
영성과 음식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영양학자들에 의하면 ‘영양 전이(Nutrition Transition)’에는 네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사냥과 채집으로 음식을 모으는 단계고, 두 번째는 농업으로 시작되는 기근 단계이며,
세 번째는 농업이 개선되어 식량이 증가하는 기근 감퇴 단계다.
마르타 자라스카에 따르면 오늘날 서양의 식단은 네 번째인 퇴행성 단계에 도달해 있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동시에 뒤죽박죽 섞여 있다.
그는 우리가 다섯 번째인 행동 변화 단계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육식을 줄이고 과일과 채소, 곡물을 많이 섭취하는 단계다. 고기를 아예 먹지 않는 게 아니다.
육식 섭취를 줄이고 채식 섭취를 늘리는 것이다.
고기 중독에서 벗어나 나와 가족과 사회와 인류의 건강을 도모하면서
지구의 건강까지 생각하는 식단을 추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언론] 정신의학신문 [기자]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출처]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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