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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7회 다르크포럼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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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RBN 댓글 0건 조회 175회 작성일 19-10-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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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넘어서 함께 하는 희망의 길을 찾아서

한국에서 2번째 다르크가 되는 경기 다르크의 개설을 축하하며 지난 9월 28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서울 국제 유스호스텔에서 한국 다르크 포럼이 열렸다. 이날 포럼은 “당신은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안됩니다” 라는 주제로 일본 전역에서 각 지역 다르크를 대표하여 42명의 일본 멤버들이 참석하였고 한국에서도 서울 다르크와 경기 다르크의 멤버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중독치료와 재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여러 관계 인사들이 함께 참여하여 그간의 노력들을 치하하고, 회복에 성공하고 있는 멤버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경험담들을 들으며 재활에 대한 희망을 다지는 자리였다.

다르크는 중독자들의 사회 복귀 재활을 돕는 목적으로 35년전 일본에서 곤도 츠네오씨에 의해 시작된 이래로 현재 80여개의 다르크가 운영 중이며, 해외의 다르크 설립도 적극 돕고 있다. 다르크의 특징이자 강점은 재활에 성공하고 있는 다르크 멤버들만이 다르크의 스태프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르크에 처음 입소하게 되는 많은 회복하고자 하는 중독자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새내기들은 산배 멤버들과 스태프들과 24시간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들이 어떻게 단약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살아있는 노하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희망이 자신의 눈 앞에 바로 있는 것이다. 한국은 7년전 일본 다르크 멤버들이 십시일반 모은 지원자금으로 서울에 처음 세워졌으며 이번 경기 다르크가 두번째로 설립되는 다르크이고 내년에 부산 다르크가 세워질 예정으로 있는 등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제까지 한국의 마약 등 약물중독에 대한 태도는 사법적 접근을 통한 거의 무조건적 격리였다. 마약퇴치운동본부의 이태수 이사는 한국의 현재 마약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첫째로 한국정부는 중독자 재활치료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고 한다. 둘째, 약물중독자에 대해 정부는 사회로부터 격리만 하면 모든게 해결되겠지하는 생각으로 너무 엄정한 형사처벌 위주의 사법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중독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독은 한 개인의 도덕적 준법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의 문제임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함 인 것이다. 셋째, 일반 국민들도 약물중독하면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는 생각보단 범죄자, 우범자의 생각으로만 바라보아 중독자들의 재활 기회와 사회로의 복귀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한국은 아직도 단약하는 것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는데 약물을 끊은 것만으로는 회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본의 경우 상당수의 약물중독자 제소자들이 사회로 나오기 전 민간 사회 복귀 재활시설인 다르크에서 생활하며 ‘재사회화’를 거친다. 다르크는 약물중독 치료가 끝난 뒤 계속된 단약에 성공하고 사회로 복귀하기 전에 새 삶을 준비하는 시설이 되어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다르크 포럼 같은 행사들과 지역사회로 들어간 한국 다르크들의 역활에 힘입어 한국 사회에도 약물중독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 중독자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데 장벽을 줄여줄 수 있도록 중독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성숙해지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포럼의 형식은 기존 다르크 포럼과 같이 포럼 참여자들이 한명씩 단상에 올라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면 통역이 일어와 한국어로 그 내용을 전달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일본과 한국의 회복자들의 성공담들과 중독자 가족의 성공담을 정리해 본다.

P (한국인) 49살로 약물 사용은 30년 정도 됐다. 아버지도 알콜 중독이어서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10대 후반부터 사회생활을 해야 했기에 클럽에서 일하며 마약을 접하게 됐는데 처음 마약하던 그 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천국을 살짝 본 기분이었다. 그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일본유학을 권유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공부할 의미도 못 느끼던 중 서울에서 알던 선배를 일본에서 만나 술집에서 일하게 되고 그로부터 4년이 내 인생에선 마약이 나의 인생을 잠식해 버린 시간이었다. 당시에는 마약이 없으면 일어나지도 걸어 다닐 수도 없었다. 당시 체중이 거의50kg 초반대였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도망치다시피 겨우 돌아와서는 온전하게 생활하기 위해 마약을 조금 줄였다. 약을 좀 줄이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중독에 빠져들었고 당시에는 외국 나갈 때에 마약을 했기 때문에 사업이 망한 후에는 마약 대신 알콜중독에 빠지게 되었다. 그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나는 나의 중독을 인정하지 못했다. 일년 사이 4번의 입퇴원을 반복하니 정말 내게 아무것도 남아있는게 없었다. 그렇게 아무데도 의지할 데가 없고 가족들마저 모두 뿔뿔이 흩어지는 지경이 되었을 때에야 나는 내가 마약중독으로 인해 삶을 수습할 수 없는 중독자임을 인정했다. 운좋게도 중독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로 인도되고 그곳에서 회복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을때 서울 다르크를 소개받고 서울 다르크에 입소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원유수 시설장님은 ‘중독에 있어서 가장 큰 메시지는 죽음이다’ 라는 말을 하신 적 있다. 나는 마약으로 너무 유명했지만 죽었을 때는 아무도 그 빈소를 찾아오지 않는 분도 알았고, 깡패로 아주 잘나가다가 마약을 접한 후 자신의 다리가 당뇨 때문에 잘라나가는데도 마약을 하다가 저세상으로 가신 분도 알았고, 마지막으로 친형이 중독을 멈추지 못하고 결국 재작년에 죽었다. 이 세 죽음들을 보면서 나도 마약을 멈추지 않는다면 기다리는 건 죽음 뿐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너무 감사하게도 현재 서울 다르크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고 마약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스캇 백 박사의 책 제목과 같이 “아직도 가야할 길”을 동료들과 함께 가고 싶다.

N (일본인) 나는 25년전 후쿠오카 다르크가 세월질 때에 입소했다. 당시에 다르크에 입소해 있던 분들 중 반이 밤이 되면 마약을 했다. 내가 자고 있으면 “똑 똑 똑” 깨워서 작은 봉투에 들어있는 마약을 건넷다. 열심히 사왔으니 같이하자고. 사실 굉장히 친절한 동료들이었다. 나는 조금 생각해 보고 “오늘은 안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을 잘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잠이 들었다. 아침에 남자 목소리에 깨보니 어제 마약을 사용한 동료가 벽을 보고 머리를 찧으며 사죄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굉장히 질이 나빴던 약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약을 안해서 정말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사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된 것은 다르크 동료들 가운데서도 “나는 오늘 마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선택을 하고 하루 하루를 버텨내는 그런 동료이 있다는 것이다. 노력해서 참고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길면 길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하지만 약물을 사용 하지않는 것만이 해답이라면 형무소가 최고의 재활시설이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중독 회복에서 중요한 점은 자신을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오늘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이라도 지켜가고 “오늘은 사용하지 않았다” 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아차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단약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배운 것이다. 그리고 중독 회복에 있어 또한가지 중요한 점은 회복 중인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자유롭게 되는 거라면 가능한 한 기쁨 속에서 생활을 해나가고 싶었다. 나도 마약중독으로 굉장히 힘들었고, 약을 끊을 수 없어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다. 무엇을 위해서 살지 않으면 안될까?  ‘무엇때문에 내가 태어났나?’ 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 속에서 떠나가지를 않았다. 곤도 상에게 “나는 왜 태어 났을까요?”라고 물었더니, “그건 네가 생각할 일이 아니다.”라는 답을 들었다. 그 대답은 정말 이상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제 곤도 상의 대답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단약을 하는 이 기간이 계속되는 한 나는 일 할 수 있고, 결혼도 했고, 세명의 애기도 생겼다. 돌아보니 그 당시에 무엇때문에 내가 태어났으며, 무엇 때문에 내가 살아가야 하느냐 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들을 깨달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오늘 하루 하루를 베스트를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면 사랑하는 동료들과 더 넓은 세계가 주어질 거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L (한국인) 예전의 나는 중독자라는 것이 창피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수 없었다. 다르크에 입소하여 생활하면서 조금씩 변한 것 같다. 절대 끊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약을 다르크 프로그램을 통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해 왔기에 가능했다. 나는 3월에 출소를 했다. 출소 당일에도 마약 친구들이 찾아와 식사를 하면서 마약에 대한 갈망이 느껴졌지만 그 갈망을 억누르고 있자니 머리가 멍~ 해졌다. 결국 단약에 대한 의지가 깨지는 것 같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약에 대한 갈망과 유혹은 나를 계속 압박해 왔지만 교도소에서의 단약의 의지로 유혹을 물리쳤다. 그러나 곧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여 약간의 돈을 만지니 다시 마약에 대한 갈망이 왔다. 어느덧 내 발걸음이 마약을 같이 하던 친구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 마약이 무섭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마약 앞에 다시는 무릎 꿇지 않겠다는 의지가 커질수록 자괴감과 함께 자살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가슴 한편에는 이렇게 죽을 바에 마약을 한번 끊어 보자는 오기도 생겼다. 다음날 마약퇴치운동본부와의 상담을 통해 경기 다르크에 입소했다. 시설장님과 동료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난생 처음 내 아픈 속내를 타인에게 얘기해 보는 경험도 하며 다르크 프로그램에 잘 적응하였다. 그러나 한 7일 정도 지나니 슬슬 못된 습관과 반항심이 생겼다. 속으로 ‘나도 다 알고 있는 일인데 이것으로 어떻게 중독에서 회복의 길을 갈 것인가’ 라고 생각하며 미팅 시간에도 대충 좋은 말만 골라 하며 시간을 때웠다. 약 한달 정도 지나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직하지 않고 인정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변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후로 미팅 때마다 정직하게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동료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내가 누구며 왜 여기에 와 있는가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다르크에서 햇빛 길로 가면 약물 중독자의 삶의 끝도 죽음이 아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마약을 시작했고 구속과 출소를 반복하며 30년을 보냈다. 그때마다 속으로 ‘내가 왜 교도소를 가야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지!’ 하면서 책임을 전가하며 살았던 중독자였다. 그러나 다르크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도덕적으로 해이하고 인성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다르크 프로그램의 하나인 영농교육을 받고 있다. 이제는 하루 하루가 이쁘고 즐겁다. “이렇게 경기도 다르크에서 배우고 느낀 것 같이만 산다면 이 지긋지긋한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잖아 !” 라는 말을 할 수 있다. 마약은 혼자서는 회복하기 힘들지만 먼저 회복한 동료들의 도움과 다르크 프로그램을 통해서 회복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U (일본인) 13년전 나는 약을 끊을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살을 시도 했다. 이깥 약 때문에 친구조차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그때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마약을 끊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저를 죽여 주세요.” 머릿속은 이상했지만 진지하고 신중하게 한 말이었다. 당시 어머니는 “너는 죽을 필요는 없어. 마약을 끊을 수 있어. 너는 앞으로 만날 사람도 많고 알지 않으면 안될 일도 너무나 많아.”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13년 전에 이바라키 다르크에 연결이 되어 들어가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지만 내게 필요한 것들은 다 있었다. 바로 동료가 있었다. 나는 다르크를 야밤 중에 3번 도망 나간 적이 있다. 당시엔 동료가 동료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몰래 도망 나와 약을 하고 다시 돌아 오고를 3번을 했다. 3번째 도망 나가 약을 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동료들이 나를 위해 준비한 야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 야식 위에는 동료들의 메시지가 있었다. “어서, 돌아와. 잘 돌아왔다.” 나는 그날부터 현재까지 12년간 단약 상태로 살고 있다. 그날부터 나는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다르크에 4년간 있고 필리핀에도 2년간 가 있었다. 필리핀의 약물의존자를 도와주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나는 처음에 내 혼자의 힘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애썼다. 필리핀에서 1년간 정말 열심히 했는데 마약을 다시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때 나를 붙잡아준 분들은 필리핀의 약물 의존자들 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지만 동료들과는 해결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3년전에 고베 다르크도 설립했다. 고베 다르크 설립과 함께 쌍둥이도 태어났다. 아내에게 정말 감사하다. 내가 13년전 죽으려고 생각 했을 땐 지금 이런 인생을 살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매일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다르크의 동료들과도 같이 생활하고 있고 이제는 “도와달라” 고 얘기할 수도 있다. “도와줘 !”라고 전화를 하면  전국의 다르크 동료들은 바로 도와준다. 내 필리핀 경험을 통해 마사루 씨나 요시야키 씨가 한국과 이렇게 관계를 해가는 것이 정말로 대단한 일이라고 다시 한번 느낀다. 나는 지금도 마음이 동요될 때가 가끔씩 있다. 다르크의 업무는 정말 힘이 든다. 그럴 때마다 곤도 상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그대로 하는 것만으로 지금 꾸려 나가고 있다.

중독자 가족의 메시지 (한국인) 막상 얘기를 하려고 올라오는데 그 많은 고통 당한 것을 얘기 하려니까 속에서 뭐가 확 올라왔다. 내 남편은 마약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30년 넘게 아들 셋을 낳으면서 본인은 끊을 수 있다고 했지만 끊지 못하고 정말 가족들에게 지옥을 살게 했다. 가정은 항상 폭탄 맞아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모습으로 오랜 기간을 살았다. 마약을 하게 되면 환각 환청이 생겨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살이 거의 20kg이 빠지며 피폐해지고 죽어가고 있었다. 나도 아이들하고 자살도 생각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웠고 힘들어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 입원인데 병원에 입원만 시키면 그냥 도망쳤다. 나중에는 구치소를 보내기 시작했다. 7번이나 신고를 했다. 주위에서도 핍박이 많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위대한 신이 있어서 남편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편이 자연사로 죽거나 교통사고로 죽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 너무 미웠다. 나도 상처가 깊지만 자녀들 또한 굉장히 상처들을 갖고 있다. 아들은 지금도 심리치료를 받고 있고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어느 날 묵상 중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는데 그가 자라온 환경이 나무 아픈 환경 속에서 자라온 것이 생각되었다. 그 빈민가에서 약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태 속에서 자라오게 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약물을 끊을 수가 없구나 라고 생각이 되었다. 남편은 약물 외에 도박과 음란 중독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도박하고, 마약 하는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생기고 그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줄 수 있게 되었다. 중독 행위를 하고 와도 “여보, 수고했어. 괜찮아? 밥은 챙겨 먹었어?” 이렇게 편안하게 말해주었다. 그때부터 남편이 조금씩 바뀌면서 변하기 시작 했다. 내가 먼저 변하니까 남편이 변하는 것을 체험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의 계신 위대한 신을 바라보고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그렇게 해주니까 남편이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남편을 믿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중독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편의 중독은 지금 멈춰 있고 지금 회복 중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크를 운영해 나가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고 그의 회복으로 가는 과정이 너무 아름답다. 다만 다르크 공동체를 하면서 생계유지를 위한 생활비를 안 갖다 주는 것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이 더 좋다. 중독을 멈추고 지금 회복하는 과정이고 또 남들을 돕는 공동체를 하고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있다.
 
[한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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